테크노 뽕짝의 황제 신바람 이박사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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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케이아이 작성일24-03-26 10:46 조회30,19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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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 뽕짝의 황제 신바람 이박사 컴백
해학 넘치는 테크노 뽕짝 ‘사우나’ 31일 발표
테크노 뽕짝의 선구자이자 뽕짝 메들리계의 슈퍼스타였던 신바람 이박사(본명 이용석)가 신곡 ‘사우나’(노상곤 작사·곡)를 발표하며 컴백한다. 신바람 이박사의 신곡 발표는 지난 2009년 발표한 ‘야야야’(이박사 작사·곡)이후 14년 만이다.
특유의 콧소리에 흥이 넘치는 이박사표 창법으로 속사포처럼 부르는 노래에는 변함이 없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곡에서 노래인생 반백년이 넘는 관록과 내공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오리지널 신바람 이박사 메들리와는 달리 테크노사운드가 접목된 테크노 뽕짝 사운드로 세련되게 제작됐다. 리믹스 디제이로 유명한 한용진 시노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프로듀서로 참여해 현대적이고 세련된 사운드가 완성됐고 3월 31일 워너 뮤직 코리아를 통해 발매된다.
신바람 이박사표 뽕짝 메들리는 원래 단순한 기타 리듬에 이박사 홀로 흥겨운 반주와 추임새를 모두 입에서 내는 소리로 해결하는 방식이어서 인기를 끌었다. 그 이전에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던 독창적 방식이었고 이후에 그대로 흉내 내는 가수도 하나 나오지 않았다.
젊어서 팝과 록 음악에 빠져 기타를 배워 록 밴드를 결성했다가 국악도 배웠다. 그러나 1980년대에 효도관광 시대가 도래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관광버스 가이드를 하며 특유의 입담과 노래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달관한 도인처럼 노래하는 테크노 뽕짝
노령의 관광객들을 위해 서울에서 경주 등 유명 관광지들을 왕복하며 제대로 된 반주음악도 없이 뽕짝으로 불리는 흘러간 가요를 스스로 반주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부르다보니 저절로 뽕짝 메들리의 도사가 되고 말았다.
1989년 4월 말 ‘신바람 이박사 관광 메들리’라는 카세트테이프가 나오자 음반시장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3개월 만에 1천만 장이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신바람 이박사는 하루아침에 유명 스타가 됐다.
이박사에 대한 소문이 일본 음반업계까지 퍼져 이박사는 1995년 소니뮤직에 스카우트돼 일본에 진출하고 승승장구를 했다. 예전에는 전혀 듣지 못한 테크노 뽕짝으로 일본 팬들을 사로잡으며 CF에 출연할 정도로 인기를 끌어 일본에서만 100억 원 이상을 번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 테크노 뽕짝 ‘스페이스 환타지’를 끝으로 귀국한 이박사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장위동 소재 3층 저택 정원에 있던 은행나무에 엉킨 덩굴장미의 덩굴을 자른다고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왼쪽 발목이 골절돼 치료하느라 8년 간 활동을 중단했다.
2009년에는 자작곡 ‘야야야’를 발표했지만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를 다쳐 활동을 못했다. 그 사이에 이혼을 두 번 하고 활동도 못해 44번이나 이사하며 전 재산을 날려 월세집에서 산다.
이제 달관한 도인처럼 마음을 모두 비운 듯 이박사는 말했다.
“예술을 알면 돈을 멀리하고, 돈을 알면 예술을 버려야지, 예술 하다 돈을 쫓으면 양아치가 됩니다. 내 경험이 그래요. 이제 신곡 만들었으니 가을쯤 꽃이 피겠지요. 서둘지 않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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