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고새울면>인기 가수 윤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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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앤스타작성일15-07-17 15:41 조회229,7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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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윤호만의 ‘꽃 피고 새 울면’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데뷔 20년쯤 지난 중견 가수로 착각을 한다. 워낙 유연하게 노래하는 데다 가창력까지 뛰어나기 때문인데 이 곡은 윤호만의 데뷔곡이다. “꽃 피면 오신다더니/새 울면 오신다더니/믿었던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내가 너무 순진했었다/사랑은 이 순간에도 내 가슴에 내 가슴에 영원을 맹세하는데/꽃만 피네 새만 또 우네 그래도 나는 기다릴꺼야/당신 너무 사랑하니까~.” 작사가 김병걸의 가사에 작곡가 이동훈이 곡을 붙인 다소 복고적인 트롯 넘버여서 더욱 더 세련된 중견 가수의 곡으로 오해하곤 한다. 사업가와 가수로 두 개의 명함을 가진 인물 이 노래의 히트로 성인가요계의 새로운 인기 가수로 부상한 윤호만은 명함이 두 가지다. 자신의 노래 제목과 사진이 들어간 가수 명함과 벤처기업 동부진공열처리사 대표 윤호만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명함이 바로 그것. 그는 가수로 활동하면서도 매일 아침 6시 반이면 인천시 주안동에 있는 자택을 나선다. 경기도 시 이 노래의 히트로 성인가요계의 새로운 인기 가수로 부상한 윤호만은 명함이 두 가지다. 흥시 방산동에 있는 회사로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쁠 때는 부천시 삼정동에 있는 공장에도 가야 하기 때문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충남 청양군 목면 지곡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윤호만은 고교를 졸업한 직후 부친이 “남자는 자고로 사업을 해야 한다”며 농협서 대출을 받아 내놓은 자금을 밑천으로 영등포 시장 근처에서 작은 금형공장을 차리며 사업을 시작했다. 이 공장은 이후 문래동을 거쳐 인천으로 갔다가 지금의 시흥 공장과 부천 공장으로 발전했다. 그의 노래 솜씨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는 8남매였는데 모두 노래 부르고 노는 걸 좋아하는 신명나는 가족이었다. 어머니도 노래솜씨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 자신도 평소 노래를 좋아했지만 가수로 활동할 생각까진 못했다. 각종 노래자랑을 휩쓴 후 작곡가 정의송 만나 데뷔 대한민국 트롯가요제에 나가 ‘추억의 을왕리’(전미소 작사 작곡)란 창작곡을 노래해 은상을 받는 등 각종 노래자랑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그는 김성기 노래강사의 소개로 작곡가 정의송을 만나 가수로 데뷔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정의송 작사 작곡의 ‘미숙이’란 곡을 받아 취입을 했는데 아내와 두 아들의 반대 때문에 타이틀 곡을 ‘꽃 피고 새 울면’으로 바꾸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정의송이 자신의 첫사랑을 그리며 곡을 만들었는데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는 여자를 그리워 한다는 내용이 비도덕적이라며 반대한 것. 그렇게 해서 부른 ‘꽃 피고 새 울면’은 우연찮은 한 사기꾼과의 인연으로 KBS 1TV의 농촌 드라마 ‘산넘어 남촌에는’의 삽입곡으로 사용되는 행운을 얻기에 이른다. 이 사기꾼과 시비를 가리려다 KBS 음향감독 임효택씨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 무명 가수가 같은 청양 출신이란 사실을 안 임효택씨가 그의 노래를 들어보고 드라마 삽입곡으로 결정했다는 것. 사업을 하다가 뒤늦게 데뷔했음에도 드라마의 삽입곡으로 사용되는 행운 덕택에 쉽게 유명해졌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아무래도 그의 풍부한 성량과 탁월한 가창력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그런 행운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주위의 평이다. 그는 가수로 활동하며 인간사를 많이 배웠다고 말한다. 노래하며 자신을 낮추고 사는 법을 배웠고 또 아내를 끔찍이 아끼는 남편이 된 것도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만학도로 중앙대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그의 부인은 교회 성가대에서 배운 드럼을 연주하고 큰아들은 기타, 작은아들은 피아노를 연주하며 일가족이 함께 노래하는 음악가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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