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주년 공연후 화려하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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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앤스타작성일04-02-26 11:24 조회87,0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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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빛 코트에 베이지색 베레모를 쓴 패티김이 들어서자 레스토랑 안 포크들이 일제히 멈춘다.
45년간 받아온 익숙한 눈길.
자연스럽게 그 시선들을 \'처리\'한 패티김이 우아하게 자리를 잡는다.
붉은색 립스틱 하나로도 더없이 화려한 이 여인은 1mm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색칠한 손을 가지런히 하고 정중하게 인사한다.
TV는 역시 거짓말쟁이다.
얼굴이 주먹만 하다. 누가 이 여인을 예순하고도 다섯을 넘긴 \'할머니\'로 볼까.
\'섹시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래서 45년을 한결같이 \'톱스타\'로 살아올 수 있었구나.
이 여인을 엿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최.초.란 수식어
패티김만큼 \'최초\'를 많이 경험한 가수도 없다.
최초의 스탠다드 팝가수, 국내 최초 창작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출연, 가수로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버라이어티쇼 \'패티김쇼\' 진행, 세종문화회관에 처음 선 대중가수, 한국 대중가수 최초의 미국 카네기홀 단독 콘서트, 최초의 \'이혼 기자회견\'을 연 연예인 등등 일일이 나열하자면 한바닥은 된다.
패티김은 \"마이크 빼들고 무대를 왔다갔다 한 것도 내가 처음 시작한 일\"이라며 가만히 서서 노래부르던 당시의 \'풍습\'을 설명했다.
★난 행.운.아
가수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을 물었더니 \"고생 한번 없이 소위 말하는 스타가 된 케이스\"라며 행운아임을 강조한다. 59년 1월 오디션을 받아 가수가 됐고 이후 별 부침없이 꾸준히 자리를 지켜왔다. 물론 \'피나는\' 자기노력이 있었겠지만.
★길.옥.윤
물론 35년전 스캔들이 있긴 했다.
\'환상의 커플\'로 불리던 길옥윤과의 이혼은 당시로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서울 조선호텔에서 대한민국 기자들 다 불러놓고 이혼기자회견이란 걸 했다.
둘이 어깨동무하고 퇴장까지 멋지게 했는데 독화살은 모두 패티김에게 돌아왔다.
\"길선생보다 체격도 크고 강한 이미지라 절대적으로 패티김이 찬 거라고들 나를 비난했다\"며 고개를 흔든다. 패티김은 \"부부생활은 부부밖에 모르는 일\"이라고 웃으며 항변했다.
★난 한.국.사.람
시종일관 여유롭게 웃던 패티김은 \"한국에서 사시냐?\"는 질문에 흥분한다. 88 올림픽 때부터 영구 귀국해 살고 있는데 아직도 \'패티김이 한국에 용돈벌러 온다\'는 말들을 한다.
\"정말 치명적이고도 불쾌한 얘기\"라고 치를 떤다.
영주권은 이미 15년전에 포기했다.
★딸 정.아와 카.밀.라
UN에서 일하는 큰딸 정아는 \'외교관\'이 되고 싶어했던 패티김의 어렸을 때 꿈을 이뤄준 고마운 딸이다.
작년엔 UN에서 함께 일하는 사위를 봤으니 진짜 \'할머니\'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둘째딸 카밀라는 지난해 가수로 데뷔했다.
카밀라는 서너살 때부터 스푼 들고 노래하던 아이였다.
가수되고 싶다는 걸 남편이 뜯어말렸다. 남편은 \"한집에 가수는 하나로 충분하다\"고 반대했지만 간절히 원하는 딸을 말릴 수 없었다. 패티김은 \"유행타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라 앞으로 길게 보고 있다\"며 카밀라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사.십.오.주.년...
내달 12일부터 사흘동안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45주년 기념 대공연\'을 갖는다.
패티김은 지난 78년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 주인공이다. 그 특별한 인연으로 45주년 공연을 이곳에서 연다.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9월의 노래\', \'가시나무새\' 등 대표적인 히트곡 뿐 아니라 \'허공\', \'칠갑산\', \'갈무리\', \'남행열차\'와 같은 다른가수 노래를 부르는 패티김을 만날 수 있다. \"와서 보라\"며 더이상의 공연 내용에 대해선 입을 꼭 다문다.
★은.퇴.는
신체적으로 허락한다면 50주년 공연을 성대하게 치르면서 화려하게 은퇴하고 싶다. 그리고 은퇴하면 절대로 대중앞에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는 게 패티김의 신조. 요즘 심심하면 \'은퇴\' 운운했다가 슬그머니 다시 나타나는 후배들에게 하는 따끔한 한마디기도 하다.
45년간 받아온 익숙한 눈길.
자연스럽게 그 시선들을 \'처리\'한 패티김이 우아하게 자리를 잡는다.
붉은색 립스틱 하나로도 더없이 화려한 이 여인은 1mm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색칠한 손을 가지런히 하고 정중하게 인사한다.
TV는 역시 거짓말쟁이다.
얼굴이 주먹만 하다. 누가 이 여인을 예순하고도 다섯을 넘긴 \'할머니\'로 볼까.
\'섹시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래서 45년을 한결같이 \'톱스타\'로 살아올 수 있었구나.
이 여인을 엿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최.초.란 수식어
패티김만큼 \'최초\'를 많이 경험한 가수도 없다.
최초의 스탠다드 팝가수, 국내 최초 창작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출연, 가수로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버라이어티쇼 \'패티김쇼\' 진행, 세종문화회관에 처음 선 대중가수, 한국 대중가수 최초의 미국 카네기홀 단독 콘서트, 최초의 \'이혼 기자회견\'을 연 연예인 등등 일일이 나열하자면 한바닥은 된다.
패티김은 \"마이크 빼들고 무대를 왔다갔다 한 것도 내가 처음 시작한 일\"이라며 가만히 서서 노래부르던 당시의 \'풍습\'을 설명했다.
★난 행.운.아
가수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을 물었더니 \"고생 한번 없이 소위 말하는 스타가 된 케이스\"라며 행운아임을 강조한다. 59년 1월 오디션을 받아 가수가 됐고 이후 별 부침없이 꾸준히 자리를 지켜왔다. 물론 \'피나는\' 자기노력이 있었겠지만.
★길.옥.윤
물론 35년전 스캔들이 있긴 했다.
\'환상의 커플\'로 불리던 길옥윤과의 이혼은 당시로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서울 조선호텔에서 대한민국 기자들 다 불러놓고 이혼기자회견이란 걸 했다.
둘이 어깨동무하고 퇴장까지 멋지게 했는데 독화살은 모두 패티김에게 돌아왔다.
\"길선생보다 체격도 크고 강한 이미지라 절대적으로 패티김이 찬 거라고들 나를 비난했다\"며 고개를 흔든다. 패티김은 \"부부생활은 부부밖에 모르는 일\"이라고 웃으며 항변했다.
★난 한.국.사.람
시종일관 여유롭게 웃던 패티김은 \"한국에서 사시냐?\"는 질문에 흥분한다. 88 올림픽 때부터 영구 귀국해 살고 있는데 아직도 \'패티김이 한국에 용돈벌러 온다\'는 말들을 한다.
\"정말 치명적이고도 불쾌한 얘기\"라고 치를 떤다.
영주권은 이미 15년전에 포기했다.
★딸 정.아와 카.밀.라
UN에서 일하는 큰딸 정아는 \'외교관\'이 되고 싶어했던 패티김의 어렸을 때 꿈을 이뤄준 고마운 딸이다.
작년엔 UN에서 함께 일하는 사위를 봤으니 진짜 \'할머니\'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둘째딸 카밀라는 지난해 가수로 데뷔했다.
카밀라는 서너살 때부터 스푼 들고 노래하던 아이였다.
가수되고 싶다는 걸 남편이 뜯어말렸다. 남편은 \"한집에 가수는 하나로 충분하다\"고 반대했지만 간절히 원하는 딸을 말릴 수 없었다. 패티김은 \"유행타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라 앞으로 길게 보고 있다\"며 카밀라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사.십.오.주.년...
내달 12일부터 사흘동안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45주년 기념 대공연\'을 갖는다.
패티김은 지난 78년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 주인공이다. 그 특별한 인연으로 45주년 공연을 이곳에서 연다.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9월의 노래\', \'가시나무새\' 등 대표적인 히트곡 뿐 아니라 \'허공\', \'칠갑산\', \'갈무리\', \'남행열차\'와 같은 다른가수 노래를 부르는 패티김을 만날 수 있다. \"와서 보라\"며 더이상의 공연 내용에 대해선 입을 꼭 다문다.
★은.퇴.는
신체적으로 허락한다면 50주년 공연을 성대하게 치르면서 화려하게 은퇴하고 싶다. 그리고 은퇴하면 절대로 대중앞에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는 게 패티김의 신조. 요즘 심심하면 \'은퇴\' 운운했다가 슬그머니 다시 나타나는 후배들에게 하는 따끔한 한마디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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