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석의 눈물 나는 실연가 '장난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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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케이아이작성일21-07-28 11:38 조회202,1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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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석의 눈물 나는 실연가 ‘장난치지 마’
기념음반으로 취입했다가 반응 좋아 가수 활동
사랑 하나만 믿고 모두 바쳤는데 여자가 배신을 때리고 떠나버렸다. 남자는 상실감에 빠져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치지만 그 사랑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김홍석이 부른 ‘장난치지 마’(김홍석 작사/송재철 작곡)가 바로 이런 경우인데 남자가 겨우 한다는 소리가 “나쁜 여자야. 사랑 갖고 장난치지 마”란다. 노래를 듣다보면 그 상황에 자신을 대입하게 만드는 묘한 곡이다.
고음으로 부르는 세미트로트. 약간 거친 창법이지만 실연한 남자의 마음을 아주 일목요연하게 그렸다. 표현이 아주 절절해 경험담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말없이 미소만 짓는다.
김홍석이 ‘장난치지 마’를 취입한 것은 2011년. 나이 더 들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봐 더 늦기 전에 기념으로 만들자는 심정으로 ‘어쩌면 좋아’ 등 모두 네 곡을 취입했다.
마음을 비우고 음반을 만들었지만 주위의 권고로 가끔 나가던 행사 무대에서 부르니 제법 반응이 좋았다. 가수로 본격적인 활동을 펼쳐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이게 웬 걸. 2017년 폐암 진단을 받았다. 오른쪽 폐의 오른쪽 끝에 달린 혹을 절제하고 치료를 받았다. 전이를 막기 위해 오른쪽 폐의 절반을 절제했지만 노래를 하고 걷는 데는 문제가 없어 주치의로부터 노래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가수 활동을 재개했다.
아이들 놀림에 목발 던져버리고 일어선 뚝심
김홍석은 1960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걸린 소아마비로 양 다리를 쓰지 못해 양쪽 목발을 짚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1학년 때 아이들이 너무 놀리는 바람에 목발을 아궁이로 던져버리고 스스로 양발로 걷겠다며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주위의 도움 없이는 홀로 일어서지도 못했는데 창문 고리와 방문 고리에 끈을 묶고 일어나는 연습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홀로 서고 홀로 걷기를 시작해 초등학교 4학년 때 목발 없이도 등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 불러 1979년 위키리가 진행하던 KBS1 TV의 <전국노래자랑> 제주 편에 나가 우승을 하고 연말 결선에 진출했다. 가수가 되겠다며 심사위원이었던 작곡가 임종수 선생의 사무실을 찾아가 레슨을 받다가 돈이 없어 가수 데뷔를 포기했다.
신설동 나사라양재학원에 등록해 1주일만 봉제를 배우다가 만리동에 있던 공장에 취직을 했다. 눈썰미가 좋아 한 달 만에 A급 봉제사의 월급을 받다가 자신의 공장을 차리기도 했다.
공장에 다니면서도 가요제가 열리는 곳이면 모두 쫓아다니며 입상을 해 상품을 받는 족족 모두 팔아 살림에 보탰다.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가요제에 나가 임희숙의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를 불러 우승상품으로 티코 승용차를 받았으나 3백만 원을 받고 판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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