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일의 '운명의 여인'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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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케이아이작성일22-04-01 15:33 조회150,7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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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일의 ‘운명의 여인’이 좋아요
호소력 짙은 창법의 트로트
구수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실력파 가수 한 사람이 등장했다. ‘운명의 여인’(조윤섭 작사/작곡)으로 데뷔한 사업가 출신 정용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첫눈에 반한 여인을 잊지 못해 그리워하는 남자의 애타는 마음을 그린 트로트. 갓 데뷔한 가수답지 않게 여유로우면서도 호소력 짙은 창법을 구사한다.
특히 끝부분 “하늘이 보낸 사람, 마지막 사랑, 내 운명의 여인아!”라는 후렴구에 이은 구슬픈 색소폰 연주가 인상적이다.
배호와 나훈아의 곡들을 즐겨 부른다는 정용일이 가수로 데뷔한 계기가 재미있다. 하루는 후배 사무실에 놀러갔더니 일산 녹음실로 노래하러 가는데 함께 가자고 했다.
본스튜디오라는 곳이었는데 노래하는 걸 구경하려니 그 후배가 안으로 들어가 한 번 불러보라고 했다. 얼결에 배호의 ‘그 이름’과 ‘파란 낙엽’을 부르고 나오니 스튜디오에 앉아있던 작곡가 선생이 “본격적으로 노래하실 생각 없으신가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생각을 할 새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그럼 한 두곡 만들어주시죠”라고 대답을 했다. 이후 가수도 아니면서 ‘유예진의 히트 가요쇼’에 나가 카메라 앞에서 배호의 ‘오늘은 고백한다’와 ‘이 순간이 지나면’ 등을 노래하며 6개월 간 연습을 하고 취입을 했다.
젊은 시절 가요제에 나가 대상 받아
해남에서 태어나 제주도 서귀포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어서 이곳저곳 전근을 다니셨기 때문이다. 서귀포 중학을 거쳐 제주교교에 입학했다. 축구를 잘해 축구 선수로 대구 청구고를 거쳐 울산 학성고교로 전학을 갔다.
고3 때 8강에 들지 못해 축구 특기생으로 대학진학이 무산되었다. 학교에서는 실업팀에 입단하라고 했지만 아버지가 반대하셔서 축구를 포기하고 다시 제주고교로 복귀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하모니카를 불며 노래를 곧잘 부르곤 했다. 고교를 졸업하기 전 나이트클럽에서 기타와 색소폰 연주를 하던 밴드부 지도 선생님이 노래를 잘 부르니 한번 노래해보라고 권해 며칠 동안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제주 한라문화제의 일환으로 열린 가요제에 나가 나훈아의 ‘해변의 여인’을 불러 대상을 받자 주위에서 가수로 데뷔하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상경해 공장을 경영하던 형님에게 돈을 받아 작곡가 사무실을 다니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불호령에 데뷔를 포기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재수를 하다가 입대를 했다. 제대 후 15년 간 호텔 직원으로 근무를 하다가 렌터카 등 관광 사업에 뛰어들었다. 90년대 후반부터 친구와 주택건설회사를 설립해 경영하며 큰돈을 벌기도 했다. 상경 후 서비스업을 경영하다가 취미삼아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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