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절한 창법의 곡 ‘문경역’ 부른 전진아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케이아이작성일23-02-24 14:59 조회97,092회 댓글0건
관련링크
- https://youtu.be/oUeWkRIWUEI 57099회 연결
본문
애절한 창법의 곡 ‘문경역’ 부른 전진아 이야기
오지 않는 님 기다리는 남자의 고독을 노래
팬들에겐 그 이름이 다소 낯설지만 전진아는 자작곡 ‘문경역’(전진아 작사/전진아 하나로 작곡)의 열창으로 단번에 듣는 이들을 사로잡는 가수로 유명하다. 오랜 무대 경력과 가창력을 고루 갖춘 가수여서 금세 그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지난 30여 년 간 일본에서 활동해온 전진아는 국내 무대 복귀를 준비하며 문경역 구 역사를 찾았다가 고즈넉한 모습에 사로잡혀 가사를 쓰게 되었다. 장소는 다른 곳으로 이전되지만 새로 개통되는 중부내륙선으로 연결되어 부활을 한다는 사실도 노래를 만드는데 한몫을 했다.
노래는 문경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오질 않는 연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남자의 외로운 모습을 그렸다. 여인을 기다리다 상실감에 빠진 남자의 고독을 애절한 창법으로 노래했다.
전진아는 ‘문경역’과 함께 발표한 국악풍의 곡 ‘세월아 가지를 마라’(하나로 작사/작곡)로도 호평을 듣고 있다. 허스키 보이스에 흥겨운 창법으로 노래한 매혹적인 곡이다.
극장무대 가수로 활동을 시작해 1973년 ‘사랑의 집’(오영원 작사/작곡)이란 곡을 발표한 경력이 있다. 전남 무안 태생으로 15세 때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 아래 무작정 상경을 했다. 동대문에 있던 의류 공장에 취직해 심부름꾼으로 일하며 재봉을 배워 돈을 벌었다. 손재간이 뛰어나 금세 재봉질에 숙련돼 3년 만에 큰돈을 벌어 공장을 직접 차렸다.
일본서 노래하며 아마추어 골퍼로도 유명해져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이면 오영원 선생 등 작곡가 사무실에서 노래를 배워 노벨극장 등에서 열리는 극장 쇼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유행하던 세무코트를 만들어 팔면서 번 돈으로 1973년 ‘사랑의 집’을 발표했다.
군 복무 후 1980년대 초반 제대한 이후 야간업소 무대에 오르면서 몇 장의 음반을 더 발표했지만 빛을 보지는 못했다. 하루는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오니 재일교포 모리야마 사장이란 분이 찾아와 일본에서 활동해보라고 권유를 했다.
모리야마 사장의 끈질긴 설득 끝에 1987년 일본 오사카에 있던 모리야마 사장의 나이트클럽 후가루에서 노래하면서 오사카와 고베 등지를 무대로 공연 활동을 펼쳤다. 고베에 있는 포토피아호텔에서 두 번의 디너쇼를 열어 입장권을 매진시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한국식 나이트클럽과 가라오케를 운영하기도 했다. 독학으로 골프를 배워 일본 아마추어 챔피언 대회에 나가 우승해 JPGA 주최 요미우리 토너먼트와 미즈노 오픈 출전권을 얻기도 했다. 이후 골프교습가로 유명해져 오사카에서 스크린골프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김종덕 프로를 알게 돼 한국 KPGA의 세미프로 자격증을 획득했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불황으로 사업을 접고 2022년 귀국해 국내에서 가수 활동을 재개하기에 이르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