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신인 박달재, 노랫속에 전하는 그의 희망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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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앤스타작성일12-05-09 04:28 조회258,8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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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신인가수가 노래하는 꿈과 희망, 그리고 따스한 인간애!
제13회 배호 가요제 출신으로 첫 앨범 ‘중년의 사랑’을 발표하고 데뷔한 가수 박달재. 그는 중년의 나이에도 소년처럼 순수한 미소와 따스한 목소리를 머금은 가요계의 뉴페이스이다. 무엇보다 역경 속에서 꿈을 이루어낸 우리 중년의 자화상이며, 가수 데뷔 이전부터 훈훈한 미담을 남겨온 진정한 우리의 이웃이기도 하다.
가수 박달재씨는 충북 음성군의 외딴 시골마을에서 6남매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독한 가난 덕분에 초등학교조차 가까스로 졸업할 만큼 어려운 가정 형편에다 정신질환과 중풍에 시달리는 어머니의 병간호 덕에 일찌감치 배움을 접고 이른 나이부터 공장 잡부와 가게 점원, 중국집 배달부 등 갖은 고생을 하며 사실상 집안의 가장노릇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렇게 기나긴 세월, 끝이 없어 보이는 가난의 질곡을 헤쳐나온 그는 어느덧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자 두 남매를 둔 중년의 가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난의 괴로움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일까,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된 그는 지난 수년 간 매월 빠짐없이 양로원과 재활시설을 찾아가 수 백 그릇의 짜장면을 대접하고 지역 초등,중학교의 급식비를 남몰래 지원하는 등 끊임없는 이웃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에게 노래란 가난에 찌들린 바쁜 일상 속의 유일한 벗이었다. 특별히 교육을 받지는 못했음에도, 선천적으로 탁 트이고 구성진 그의 노랫 소리에 주위의 칭찬은 항상 끊이지 않았다. 이따금 시간을 내 지역 노래경연대회에 나가 상을 타오기도 했지만,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식당에 메달려있어야 하는 그에게 가수 데뷔는 언감생심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이런 박달재씨에게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몇년 전, 일을 다녀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크게 났었어요. 그래서 병원신세를 한동안 졌는데, 그덕에 일을 쉬고 시간 여유가 조금 생긴 것이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 기회에 가수가 돼서 더 큰 봉사를 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을까...(웃음)"
주위의 권유로 제 13회 배호가요제에 출전하게 된 박달재씨는 이 대회에서 당당히 대상을 거머쥐게 된다. 그리고 이내 이 가요제를 통해 만난 작곡가 김완식과 의기투합한 그는 낮에는 장사하고 밤에는 연습하는 길고 고된 준비기간을 거쳐 마침내 가수로서 첫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가수 박달재의 첫 앨범 속에 담긴 다섯 곡의 신곡들은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오늘을 이어온 우리네 중년들, 그들이 겪어온 삶의 편린들이 진솔하고 따스한 가수 박달재의 목소리에 소박하니 담겨있다. 작곡가 김완식의 감성넘치는 멜로디가 인상적인 타이틀곡 [중년의 사랑]은 그의 동반자인 그의 아내에게 한없는 사랑과 존경을 담아낸 곡이다.
"...사실 가수로 첫 앨범을 준비하며 가장 고마웠던 사람이 바로 제 아내였습니다. 가난할 때 저를 만나서 지금껏 고생만 했고, 자리가 잡히고 나서도 여지껏 남들처럼 어디 한번 제대로 놀러가지도 못하고 내내 저랑 봉사활동만 다녔으니까요. 이 노래를 제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제 아내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이어지는 후속곡 [두메산골]은 그에게 있어 제 2의 고향인 이천시 남한강의 아름다운 풍광과 고향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중년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트랙! [노래하는 내 인생]에선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기어이 가수의 꿈을 이루어냈고, 쉼없이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가수 박달재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낸 곡이다. 이밖에도, 지나간 사랑에 대한 회한이 담겨있는 [왜 나를 울리시나요], [사랑에 미련] 역시 박달재의 구수하고 투박한 매력을 맛보기에 손색없는 트랙들!
"...지금 가진 목표라면...조만간 이동식 취사가 가능한 차량을 마련해보려고요. 저도 옛날에 큰 화재를 겪은 적 있었지만, 수해나 화재같은 재해를 맞으신 분들이 가장 어려워하시는 문제가 바로 먹는 문제거든요. 취사 차량을 마련해서 앞으로 언제든 재해지역으로 달려가서 재해입으신 분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해드릴 계획이랍니다...(웃음)"
그에게 새롭게 주어진 가수라는 직업은 그간 남몰래 해오던 그의 봉사활동에도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제 그는 어려운 이웃의 배고픔 뿐 아니라 정서적 메마름도 함께 적셔줄 수 있어 그저 행복할 뿐이라고. "...기왕 시작한 일인만큼 더 노력해서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무대를 선보이겠습니다. 훌륭한 가수가 되어 인정을 받다보면 더 많은 분들에게 더 크게 사랑을 베풀 수 있을테니까요..." 신인가수답게 그는 아직 자신을 꾸미는 일은 다소 서툴렀다. 하지만, '그냥 열심히, 힘이 닿는데까지 남을 도와가며 살아갈 뿐'이라는 어찌보면 멋없는 그의 인생철학은, 지금껏 그 어떤 이들의 미사여구보다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가수 박 달 재 Profile
충청북도 음성군 출생
수상 경력
2008년 한반도 가요제 금상 2009년 독도 가요제 금상 2009년 제 13회 배호 가요제 대상 2010년 실버TV 신인가수상 2011년 실버TV 올해의 가수상 및 봉사가수상
음반
2012년 데뷔 앨범 ‘중년의 사랑’ 발표
절망 속에서 피어난 꿈 그리고 사랑! - 가수 박달재의 삶, 그리고 사랑이야기
늦깎이 신인가수 박달재. 가요 무대에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신인가수이지만 무대에 오르기까지 그의 인생은 차라리 절망이라 표현해도 좋을만큼 역경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충북 음성의 한 시골마을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잠시도 배고픔을 뗄 수 없는 가난 속에서 살아왔다. 초등학교 땐 육성회비조차 낼 형편이 못 되어 회비 대신 학교 축사의 돼지를 키우며 학교를 다녔지만 그래도 꿈만은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가난의 질곡에서 생활의 기력마저 잃은 어머니는 이내 치매와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결국 가까스로 초등학교는 마친 그에게 돌아온 것은 상급학교 진학 대신, 몸져누운 어머니와 생활능력을 잃은 가족을 대신해 한 집안의 생계를 도맡아야 하는 가장의 자리였다. 어린 나이부터 그는 공장 인부, 가게 점원, 중국집 배달원 등 닥치는데로 일을 하고 집에 와서는 빨래와 바느질, 밥짓기까지 해야만 했다.
"...거의 10여년을 방 대신 마룻바닥에서 자야만 했어요. 늦은 시간에 홀연히 일어나셔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시고 뒷산에 올라가 계시는걸 어렵게 찾아 모셔오기도 여러번이었으니까요. 정신이 돌아오실 땐 인정많고 고우신 분이 난데없이 험한 소리를 내뱉기도 하시고... 결국 아들이 부족한 덕에 끝내 정신도 다시 찾지 못하시고 이렇다할 호강도 못해보셨지요......"
그렇게 평생 고생만 하던 어머님은 결국 오래 전 치매로 인한 실족사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아마도 자식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스스로 몸을 던지신 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그의 마음은 여전히 먹먹하다고 한다. 가난의 고통을 알기에, 그리고 못다한 효도의 회한이 너무도 크기에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어려운 이웃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상을 치루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식조차 돌보지 않아 길거리에 버려진 행려노인을 자신의 집에 모시고 와 자신의 비용으로 간병인까지 고용하며 극진히 모셨고, 노인이 세상을 뜨자 장례까지 치루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미 십여 년 전부터 광주군 소재 '작은 안나의 집'과 '믿음의 집'등 양로시설의 노인들을 찾아 매월 짜장면 수백 그릇을 무료 제공하고 있고 지역 내 초, 중등학교 결식아동들의 급식비를 몰래 기탁하기도 하였다.
슬하의 1남1녀는 모두 독립하였고, 몇 년 전, 배호가요제 대상을 계기로 가수 데뷔까지 한 가수 박달재씨. 이제는 편안한 여생과 화려한 삶을 꿈꿔 볼만도 한데, 그는 여전히 가게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짜장면을 볶고, 시간을 쪼개어 노래연습을 하고 봉사활동 다니기에 여념이 없다. 가수활동은 이제 그의 삶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앞으로도 그는 어려운 이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않고 달려가 손수 빚은 짜장면과 갈고 닦은 그의 노래솜씨를 유감없이 베풀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늦깎이 신인가수의 소박하지만 누구보다 아름답고 값진 무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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