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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이 되살린 조규철의 '운명 같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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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케이아이
작성일22-09-13 17:01 조회130,6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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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이 되살린 조규철의 운명 같은 여인

임영웅이 노래하며 다시 히트한 세미트로트

가요계에서 임영웅처럼 선배 가수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가수도 드물다. 과거라는 창고에 숨겨진 옛 가요를 꺼내 다시 불렀을 뿐인데 그 노래가 다시 알려지고 그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 관심이 쏠려 다시 활동하게 만드는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규철이 부른 운명 같은 여인’(장경수 작사/이호섭 작곡)도 바로 임영웅이 노래해 다시 인기를 누리게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KBS 2라디오 악단장으로 23년간 활동한 조규철이 운명 같은 여인을 발표하며 데뷔한 것은 지난 2000년이었다.

 

KBS 악단장이라는 신분 덕택에 전국의 KBS 라디오들이 조규철의 곡을 자주 소개해 운명 같은 여인은 금세 인기곡이 되었다. 더구나 전국노래자랑에 일곱 번이나 출연하면서 조규철과 운명 같은 여인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운명 같은 여인은 아름다운 노랫말에 빠르고 경쾌한 리듬의 세미트로트로 당시 젊은 가요팬들의 취향에 딱 어울리는 곡이었다.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노래자랑에 나와 부르는 젊은 출연자들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는 법. 10년이 지나고 20년이 흐르면서 팬들이 이 노래의 존재를 잊을 무렵 난데없이 임영웅이 부르면서 운명 같은 여인의 역주행 인기가 시작되었다.

 

 

KBS라디오 악단장으로 일하다 취입해 데뷔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조규철은 사촌형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미군방송 AFKN 라디오를 들으면서 자랐다.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촌형을 따라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고교 졸업 후 음대 진학을 위해 서울 종로 세기음악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친구들을 사귀면서 자연스레 무명밴드의 키보드연주자가 되어 문산 등 기지촌 미군 클럽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3~4년 미군 클럽 무대에 서던 중 기타리스트 이중산을 만나 이태원에서 활동하다가 1980나를 두고 아리랑으로 유명한 김훈과 트리퍼스의 멤버로 입단해 키보드와 보컬을 담당했다.

 

그룹 트리퍼스를 나와 KBS 2라디오 악단에 입단한 것은 1998.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라디오 악단이 폐지되었다. 라디오에서 악단이 필요할 경우 TV악단을 모셔다가 제작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소속이 다르다보니 말도 듣지 않고 진행이 쉽지 않았다.

 

임수민과 이호섭이 진행하던 희망가요에 전화노래방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악단 동원이 어렵다보니 조규철이 반주음악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악단장이란 호칭을 얻었다.

 

희망가요의 진행자였던 작곡가 이호섭 선생에게 부탁하자 금세 신곡이라며 내놓은 곡이 운명 같은 여인이었다. 2012년에는 끝까지’(임휘 작사/박현진 작곡)를 발표했다. 전주 KBS ‘아침마당에 악단장 자격으로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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