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파 양세정의 사모곡 '엄니 달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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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케이아이작성일22-06-24 16:13 조회135,0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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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파 양세정의 사모곡 ‘엄니 달무리’
대금 연주가 구슬픈 애절한 창법의 곡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면 누구나 저절로 눈물이 나오는 법이다. 목련이 지는 계절 달무리를 보며 어머니가 그리워 눈물을 흘린다는 내용의 노래가 등장했다.
양세정이 부른 신곡 ‘엄니 달무리’(설연 작사/홍성욱 작곡)가 바로 문제의 곡으로 팬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고음으로 부르는 애절한 창법의 곡으로 노랫말이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장기호의 대금 연주가 구슬픈 분위기의 트로트. 맑고 고운 목소리에 고음으로 애달프게 부르는 양세정의 보컬과 가슴을 후비듯 파고드는 대금 독주의 앙상블이 절묘하다.
양세정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평생 무대가수로 활동했지만 뒤늦게 취입한 가수로 꼽힌다. 지난 2006년 조은정이란 예명으로 ‘사랑의 울타리’(고민주 작사/이상훈 작곡), ‘애련’(김종호 작사/작곡), ‘사는 게 그렇더라’(김종호 작사/작곡) 등을 발표하며 취입 가수가 되었다.
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옥을 짓는 대목이었는데 시조를 무척 잘 읊으셨다고 한다. 본명이 양덕희였는데 2018년 양세정으로 개명을 하면서 예명이자 본명이 되었다.
덕진면 노송리는 월출산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월출산이 병풍처럼 내려다보이는 지대 높은 마을이다. 나이 어린 양세정은 그 월출산을 내려다보면서 트로트를 부르곤 했다.
평생 무대가수로만 활동하다 뒤늦게 취입
영암여중에 다닐 때는 친구들에게 ‘목포의 눈물’, ‘단벌신사’ 등 트로트를 가르치면 무척 좋아했다. 1983년 영암여고를 졸업하고 상경해 인사동에 있던 작곡가 한문성 선생 사무실에 취직해 경리로 일하며 정식으로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낮에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천호동 스탠드바, 나이트클럽 무대에 서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미자 조미미 심수봉 등 트로트가 주요 레퍼토리였다.
밤낮으로 돈 벌기에 바빠 취입은 생각지도 못했다. 누구라도 취입을 권했다면 좋았을 텐데 전혀 시도할 생각도 못했다.
밤무대에 서기 시작한지 5년이 지난 1988년 한국 프로덕션을 통해 일본 밤무대에 진출했다. 서울보다 밤무대 출연료가 높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도쿄에 본부를 두고 후쿠오카 등지를 오가며 무대에 올랐다.
도중에 작곡가 양영식 선생의 권유로 일시 귀국해 흘러간 가요 메들리를 취입했다. 덕희라는 예명을 쓰기도 하고 그냥 디스코 언니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1998년 귀국해 밤무대에 다시 서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밤무대가 줄어들며 행사장에 쫓아다니면서 자신의 노래가 필요하다는 걸 뒤늦게 절감하고 2006년 취입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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